미용실 스텝을 시작하고 3개월 만에 샴푸실을 벗어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6개월이 지나도 샴푸대 앞에 서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저는 직접 겪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스텝 생활은 단순히 머리를 감겨주는 일이 아닙니다. 눈치와 체력, 그리고 버티는 힘이 전부인 시간입니다.
89년도 샴푸실, 지금도 본질은 다르지 않다
저는 89년도, 90년대 초에 스텝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인턴이라는 말도 없었고 그냥 '스텝'이었습니다. 2년에서 3년은 당연히 해야 하는 기간이었고, 처음 3개월에서 6개월은 샴푸가 사실상 전부였습니다.
샴푸 서비스란 단순히 머리를 적시고 감겨주는 게 아닙니다. 두피 압력 조절, 수온 관리, 린스 잔여물 제거까지 손님의 두피 상태를 파악하면서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처음에는 이게 왜 어려운지 몰랐는데, 손님이 "시원하다"는 말 한마디 안 해주면 뭔가 놓친 거라는 게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달라졌습니다.
제가 운이 좋았던 건 샴푸독을 안 겪었다는 겁니다. 샴푸독이란 샴푸제나 퍼머 약품에 반복 노출되면서 손에 피부 트러블이 생기는 직업성 피부염을 말하는데, 스텝들 사이에서 거의 통과의례처럼 여겨지던 고통이었습니다. 주변 동료들이 손등이 갈라지고 진물이 나는 걸 보면서도 라텍스 장갑 하나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지금은 니트릴 장갑이 기본 지급되는 매장도 많아졌지만, 그때는 맨손으로 버티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빨리 샴푸실을 벗어나고 싶어서 남들보다 두 배, 세 배는 더 신경 썼던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3개월 만에 홀로 올라왔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시작이었습니다.
홀 업무의 현실, 그 전쟁 같은 하루

샴푸실을 벗어나면 홀 생활이 시작됩니다. 퍼머 와인딩, 드라이 보조, 약제고 파악, 손님 안내, 도구 소독, 재고 체크까지 한꺼번에 처리해야 합니다. 89년도에는 여기에 손톱 손질 서비스까지 포함이었습니다. 지금은 네일을 따로 받는 시대가 됐으니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퍼머 와인딩이란 파마를 시술할 때 롯드라고 불리는 작은 원통형 기구에 머리카락을 균일하게 감아 고정하는 작업입니다. 이게 말리는 각도, 텐션, 섹션 크기에 따라 완성된 컬의 방향과 강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단순 보조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디자이너 선생님 손 옆에서 눈으로만 보다가, 어느 날부터 "네가 해봐"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때부터 진짜 배움이 시작됩니다.
홀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이른바 상황 우선순위 파악, 즉 트리아지(triage) 감각입니다. 트리아지란 원래 의료 현장에서 환자의 긴급도를 판단해 처치 순서를 결정하는 개념인데, 미용실 홀에서도 정확히 같은 감각이 필요합니다. 원장님이 샴푸실로 들어가는 순간, 현재 시술 중인 손님의 약제 타이머는 얼마나 남았는지, 다음 손님 준비는 어디까지 됐는지, 지금 도울 수 있는 손이 나뿐인지를 0.5초 안에 판단해야 합니다. 이걸 못 하면 실수로 이어집니다.
팁도 잊을 수 없습니다. 힘든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작은 즐거움이었는데, 그 시절엔 팁을 고스란히 스텝에게 전달하지 않는 디자이너도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일입니다. 손님이 "오늘 감사했다"며 건네주신 돈이 디자이너 주머니로 들어가는 걸 봤을 때의 기분은 아직도 기억납니다. 지금은 그런 문화가 많이 사라졌지만, 서비스업에서의 팁 문화는 여전히 매장마다 차이가 큽니다.
스텝 생활에서 체력적으로 힘든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구조로, 의자에 앉는 시간이 밥 먹는 시간 외에는 거의 없습니다
- 샴푸독, 중화독 등 약품에 의한 피부 트러블 노출이 상시적입니다
- 어린 손님(영유아) 시술 보조 시 신체적 접촉과 예측 불가한 움직임에 대응해야 합니다
- 감정 노동 강도가 높아 컴플레인 대응 시 정신적 소모가 큽니다
지금 스텝 생활이 더 어려운 이유
지금 시대의 스텝 환경은 예전보다 분명히 나아졌습니다. 브랜드 미용실들은 단계별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외부 교육을 돈 주고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습니다.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걸리는 기간도 예전의 2~3년에서 지금은 1년에서 1년 반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고용노동부 직업 정보에 따르면 헤어디자이너의 직업 만족도는 서비스 직군 중 상위권에 속하지만, 초기 수련 기간의 처우 문제가 이직률을 높이는 주요 요인으로 꼽힙니다(출처: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문제는 급여입니다. 배울 것은 많고 할 일은 많은데, 스텝 기간의 급여는 여전히 최저임금 수준이거나 그 이하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미용 산업 종사자 현황 조사에 따르면 스텝 및 인턴 단계 종사자의 월평균 급여는 디자이너 대비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나타납니다(출처: 통계청 e-나라지표). 그러니 '스텝이 귀하신 몸'이 된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융통성(Flexibility), 즉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능력이 스텝 기간을 빨리 마치는 핵심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눈치가 빠르고 우선순위를 스스로 파악할 줄 알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홀 전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반대로 지시를 기다리는 습관이 강하면 아무리 오래 있어도 그 자리에 머무르게 됩니다. 제가 3개월 만에 샴푸실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이 차이였다고 봅니다.
지금 스텝 생활을 하고 계신 분이라면, 월급이 적은 게 억울하고 체력이 한계에 왔을 때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5분, 10분을 더 오래 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간이 숨을 고르는 유일한 순간이었으니까요. 그 감각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시간을 버텨낸 사람이 결국 디자이너가 됩니다. 빠른 길은 없지만, 방향을 알고 걷는 것과 모르고 걷는 것은 다릅니다.
참고: #헤어인턴